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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성규 (헌병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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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
김성규(金聖奎, 1891년 6월 7일 ~ 1919년 3월 4일)는 일제강점기의 헌병 보조원으로, 3·1 운동 당시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만세 시위대에 발포했다가 시위대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.
생애 및 활동:


  • 1910년 8월 14일 평양헌병대 헌병 보조원이 되었습니다.
  • 조선인에 대한 감시 및 탄압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였고, 일제에 지속적으로 협조하며 친일 행위를 했습니다.
  • 1912년 8월 1일 일제에 협력한 공로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습니다.
  • 1919년 3월 4일,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열린 장날, 3·1 운동의 영향으로 만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. 김성규는 사천헌병주재소 소장 사토 지쓰고로(佐藤實五郞)의 지시를 받고 다른 헌병 보조원들과 함께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현경묵 등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.
  • 발포에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사토 소장 및 다른 헌병 보조원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살해되었습니다.
  • 1919년 9월 11일, 일본 정부는 김성규 등 사망한 조선인 헌병 보조원 3명에게 시위 진압 공적을 인정하여 욱일장 훈8등 백색동엽장을 추서했습니다.

사후 평가:

  •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.
  •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포함되었습니다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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